손책이 때려잡은 사람들

흔히 촉을 보고 거품 거품 하지만 따지고보면 오나라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생맥주 마냥 거품으로 가득 들어찬 나라도 없지 말입니다.
 
1. 유요
 
양주자사로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다. 그 당시 원술이 회남이 있었다. 유요는 두렵고 꺼려졌으므로 감히 양주로 가지 못했다. 유요가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려고 하자 오경과 손분이 그를 영접하여 곡아에 있게했다. 원술은 황제의 칭호를 참칭하려고 기도하면서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유요는 번능과 장영을 파견해 장강가에서 주둔하며 원술에게 대항하도록 하고 오경과 손분은 원술로부터 관직을 받았기 때문에 강제로 내쫒았다.
 
->조정에서 정식으로 임명된 관리는 유요였는데 원술이 깽판치느라 임지엔 못가고 양주에 주둔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원술이 강동을 침략해오자 원술이 임명한 오경(손책 숙부)를 내쫒았는데 손책이 옳다구나 하고 뒷치기 들어왔죠. 유요가 특별히 포악해서 오경을 내쫒은게 아닙니다.
 
2. 육강
 
육손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당조부이며 여강태수였던 육강을 따라 임지에서 생활했다. 원술은 육강과 틈이 있었으므로 장차 육강을 공격하려 했다. 육손은 육손과 친척들을 오현으로 돌려보냈다. -육손전- 
 
원술은 서주를 공격하려고 여강태수 육강에게 쌀3만섬을 요구했다. 육강이 주지 않았으므로 원술이 매우 노여워했다. 손책이 이전에 육강을 방문했었지만, 육강은 만나주지도 않고 주부로 하여금 그를 접대하게 했다. 손책은 항상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손책전-
 
-> 삼국전투기에선 육강이 란바랄 비스무리한 백전노장으로 나옵니다만 아닙니다. 꿀물이 지말 안듣는다고 행동대장 손책 파견해 잡아 죽인겁니다.
 
3. 번능, 장영, 우미
 
유요는 번능과 우미를 파견하여 동쪽의 횡강진에 주둔하도록 하고 장영은 당리구에 주둔시켜 원술에 항거하도록 하였다. -손책전-
 
원술은 다시 손분과 오경을 파견하여 함께 번능과 장영등을 공격하게 했으나 함락시킬 수는 없었다. 손책이 강동으로 건너가 손분과 오경을 원조하고서야 장영과 번능등을 깨뜨릴 수 있었으며, 마침내 유요에게 나아가 공격할 수 있었다.  -오서 종실전-
 
->얘들은 그냥 명령받은 데로 원술에 맞서 싸우다 패한죄밖에 없습니다. 손책과 만날당시 저 친구들은 막강한 원술과 싸우느라 힘 빠진 상태였습니다.
 
4. 작융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여 서주땅이 혼란스러워 지자, 남녀 1만여명, 말 3천필을 끌고 광릉으로 달아났다. 광릉태수 조욱은 빈객을 대하는 예절로서 그를 대우했다. 이보다 앞서 팽성의 상 설례가 도겸의 압박을 받아 말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작융은 광릉에 인구가 많음을 탐하여 주흥을 틈타서 조욱을 살해하고 병사를 풀어 약탈을 한 후에 가득 싣고 떠났다. 도중에 설례를 죽이고 그 후에 주호를 죽였다.  -유요전-
 
-> 이 친구는 서주에서 흘러 흘러 유요밑에 들어왔는데 낙하산에 가깝구요.
 
5. 왕랑
 
(도겸이) 조욱을 광릉태수로 왕랑을 회계태수로 삼았다. 손책은 양자강을 건너 땅을 침략했다. 왕랑의 공조 우번은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으므로 그를 피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왕랑은 자신이 한 왕실의 관리이므로 응당 성읍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손책과 싸웠는데, 패배하여 바다에서 표류하다고 동야에 이르렀다.  -왕랑전-  
 
-> 전에도 말했지만 도겸은 한왕시로부터 정식으로 작위를 하사받은 군벌이었죠. 왕랑은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던 '문관'입니다.
 
6. 주흔
 
원술은 오경(손책 외숙부)을 승진시켜 단양태수를 겸임하게 하고, 전임태수인 주흔을 토벌하여 마침내 그의 군을 점령했다.  -오서 비빈전- 
 
왕랑은 크게 놀라 이전의 단양태수인 주흔등을 파견해 군대를 이끌고 앞으로 나가 싸웠다. 손책은 주흔등을 무찌르고 마침내 회계현을 평정했다.  -오서 종실전-
 
-> 조조와 하후돈에게 군사를 빌려준적도 있는 사람이죠. 원술이 지맘에 안든다고 한번 박살냈던 사람입니다.
 
7. 엄백호
 
하비의 진우라는 자가 자칭 오군태수라고 하며 해서에 주둔하며 호족 엄백호와 내통했다. -여범전-
 
허공은 남쪽으로 산적 엄백호에게 달아나 기댔다. -주치전-
 
오나라 사람 엄백호등은 각기 무리 만여 명씩을 모아 도처에 주둔했다. 오경등이 먼저 엄백호 등을 격파하려고 즉시 회계에 도착했다. 손책이 이렇게 말했다. "엄백호등 일군의 강도들은 큰 뜻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 붙잡을 수 있습니다."  -손책전-
 
-> 엄백호는 강동의 토착세력 이었는데 기껏해야 도적떼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보입니다.
 
8. 허공
 
주치가 전당으로 부터 진군하여 오군으로 가려고 하자, 오군태수 허공이 유권에서 그를 저지시켰다. 그래서 주치는 허공과 싸워 크게 무찔렀다. -주치전- 
 
-> 자기 땅 지키다 손책군에게 박살난 케이스로 무장은 아닙니다. 그다지 그릇이 커보이지도 않구요.
 
손책이 강동정벌 과정에서 박살낸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개중에 무장이라 할만한 이는 엄백호 정도구요. 나머지는 전부 문관이나 낙하산 인사, 원술과 싸우다가 힘다 빠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것도 조정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인사들을 원술에 지맘에 안든다고 깽판치면서 손책보내 죽이고 돌아다닌거죠.
 
연의를 쓴 나관중 선생은 이건 좀 안되겠다 싶었는지 유요, 왕랑, 엄백호등을 묶어서 무슨 대마왕 집단처럼 만들어서 손책을 띄워줬고 강동 소패왕 신화가 탄생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삼국전투기에서 나관중이 일부러 손책의 초기 군공을 제대로 안적어줬다고 투덜거리는거 보면 우스워서 배꼽이 춤을 춥니다.)
 
ps. 섬나라 사람들의 오나라 사랑은 이해가 안갑니다.
 
ps.2. 손책을 제대로 띄우려면 군사적 능력만 강조하기 보단 정치가, 종합적인 전략가로서 역량과 대국을 살피는 안목, 용인술등을 포함한 인간적인 그릇에 주목하는게 훨씬 낫습니다.(조조, 유비 두 굇수만은 못해도 손권보단 낫다고 봅니다. 삼고초려 비슷한 일화는 손책도 가지고 있답니다.)

by rezen | 2009/04/01 02:46 | 잡설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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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aphyr at 2009/04/01 02:56
유요나 왕랑은 몰라도, 엄백호가 저런 세력이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_-;
이런 사실들을 보면 정말 연의 작가의 대단함이 새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롱쿠스 at 2009/04/01 09:08
그 삼고초려 대상이 바로 '장소'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4/01 10:28
출발점이 저랬던 탓도 있어서 오는 소소한 내분에 잘 휘말리더군요.
하여튼 물 건너 사람들은, 밸런스 맞추느라 좀 띄워준 걸 무슨 근거로 '오히려 깎아내렸다'고 믿는지... (긁적)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04/01 11:43
제가 생각하기에 오나라를 띄어주는 이유는 촉하고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먼치킨 촉나라를 두번에 걸쳐서 (하나는 기습전이기는 했지만) 개박살낸 나라는 오밖에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시무언 at 2009/04/01 12:51
어쩌면 나관중은 오빠였을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군요(...)
Commented by 가이제르크 at 2009/04/01 21:06
개인적으로 연의에 의한 큰 피해자 중 하나가 왕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사 기록에서는 Rozen 님 말대로 이름 있는 문관이었고, 조조도 그를 중용했으며, 위나라 명제 때까지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살다가 자기 집에서 편히 죽은 인물인데. 그런데 연의에서는 유요와 엄백호와 묶여서 손책에게 깨지는 악당처럼 나오질 않나, 제갈량의 북벌에서는 제갈량의 말빨에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피를 토하면서 죽는 걸로 나오질 않나...
Commented by 메발루이 at 2009/04/01 21:41
일전에 올드캣님이 쓴 영웅평가에서는 조조-유비-손권-손책-원소 순으로 점수를 매기신 것 같더군요. 그래서 밑에 다른 분이 손권>원소는 인정해도 손책>원소는 인정할 수 없다고 답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좋은 글이 많았는데, 지금 봉인되어 있는 게 아깝더군요.

그렇다면 오나라를 원소와 비교하면 어느 쪽을 더 높게 치시는가요?
Commented by 태평 at 2009/04/01 22:46
그런데 왜 이렇게 삼국지에서 손책을 띄운걸까요???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1 23:17

저는 좀 다르게 봅니다.


단순히 '문관'이란 이유만으로 군사상에 무능했다고 볼 순 없지 않을까요.

제갈량, 사마의, 육손 등도 따지면 귀족이나 호족으로 유학을 배운 문사들이었고....

엄백호의 경우 무려 1만의 세력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을 보면 단순히 조롱의 거리로 삼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오나라 사람들이 엄백호를 '도적의 무리'라고 했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육손도 관우가 별볼일 없다고 했거나 두예가 강유를 저평가한 예를 따라 관우, 강유도 별 볼일 없는 장수들... 이 되겠구요.


그리고 적어도 제가 접한 연의나 게임에선 손책에게 저항했던 패거리들(왕랑, 유요, 엄백호 등)이 죄다 찌질하게 묘사되었는데.... 혹시 괜찮다면 이들을 '대마왕'으로 묘사한 판본을 좀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

Commented by rezen at 2009/04/01 23:55
제가 문관이라 한건 말그대로 군사와 별 인연이 없다는 뜻으로 적은겁니다. 그리고 대마왕이란건 엄청나게 강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악당으로 묘사했다는 뜻입니다.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1 23:22

당시 손책의 활약상이 거품인가, 아닌가는... 당시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조조가 자신의 딸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무튼 가족 중 한사람을 손씨 집안과 연결하려 한 부분도 있고 헌제에게 청탁하여 손책에게 벼슬을 준 적도 있습니다.

(말이 좋아 헌제였지 사실상 조조의 의지였죠)



"손책이 천리에 이르도록 싸우길 거듭하여 장강을 남김없이 영유하고 태조(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장강을 건너 허도를 습격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는 모두 두려워 떨었으나 곽가만은 사료하여 말했다."

"손책은 강동을 병합한 직후로 주살한 사람들은 모두 영웅호걸들 뿐이오 그러 함에도 손책은 경솔하게도 경비를 단단하게 하지 않았으니 백만의 군세를 거느리고 있다 하여도..."


위 두 기록은 곽가전의 기록인데, 물론 당시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는 상황이었다는 점 또한 감안해야 겠지만 만약 결국 도토리 키재기 싸움에서 운 반, 원술 혜택 반으로 강동을 재패했다면 조조군 참모진이 저렇게 떨었을 지도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rezen at 2009/04/02 00:07
서주의 진등을 살짝 건드렸다 진등이 그들을 격퇴하자 물러난 기록이 있지요. 손책의 세력으론 허창은 고사하고 서주나 뚫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태사자는 유요 휘하에 있었고 제대로 쓰였다고 하기에도 뭣하죠. 유요가 원술과 싸우다 힘빠진 상태였던건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분명히 추신에 적었지 않습니까? 소패왕 운운하며 단편적인 군사적 실적을 강조하기보단 리더로서 정치적, 전략적 식견과 대국적인 안목, 용인술에 주목해서 살펴보자고. 제가 손책을 정말 까고 싶었다면 그런건 언급안했겠죠. 굳이 하나하나 예를 들어야 하는건 아니잖습니까? 이 글은 기본적으로 연의에 의해 씌인 거품을 걷어내고 손책의 진짜 장점을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쓴 글입니다.

손책빠들 상당수가 그저 용력, 군사적인 능력만 바라보고 전투형 군주 운운하며 단편적으로 찬양하는데 그치는 경우를 많이봤는데 그런식의 빠짓은 손책에게 별 도움이 안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1 23:25

상기 '영웅호걸'에 대해서 '파성'은 "원수를 갚을 자들이 있다는 의미"로 보는데 저는 "세력이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강동의 대대로 터를 잡아온 호족이나... 그냥 말 그대로 강동에서 나름 한가닥 했던 사람들... 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손책이 잡은 사람들 중에 '태사자'도 있지 않던가요?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1 23:28

그리고 왕랑에 대해서도 찾아 봤는데... 이 분도 아주 멍청한 먹물은 아닌 것 같아요.

역임했던 관직들을 보면 군좨주나 참사공군사 등이 있는데... 이게 군사 관련 직이고 임명자가 다름아닌 '조조' 거든요.
Commented by rezen at 2009/04/02 00:07
전 왕랑이 당대에 이름을 날렸던 명사라고 했지 멍청하다고 한 기억은 없는데요. 군사 관력 직책을 맡은것과 실제 야전에서 병사를 지휘하는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별로 길지도 않은 댓글은 다음부터 하나로 합쳐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2 05:00
손책을 제대로 띄우려면 군사적 능력만 강조하기 보단 정치가, 종합적인 전략가로서 역량과 대국을 살피는 안목, 용인술등을 포함한 인간적인 그릇에 주목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전 이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회의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손책은 무장이었지 군주의 자질에 대햇너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봐요.
(비명횡사한 부분도 감안해야 겠지만)


예를 들어서, 손책이 죽인 사람 중에 육강이 있었거든요. 이 육강이 누구냐면 육손과 일가 친척 사람으로 강동의 대호족 중 한사람 입니다. 강동 사성 호족 중의 한 사람을 죽인 이유는 무엇도 아니고 다름 아닌 "전에 육강이 손책을 푸대접해서..." 라는 이유였지요.

손권은 손책 사후였나요, 그 즈음에 손책의 딸을 육손에게 시집 보내는데 전 이걸 냉각된 육씨와 손씨의 관계 속에서 손권이 먼저 정권의 안정을 위해 화해의 제스쳘르 내민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상기에 언급하신 패배한 군웅들 중 상당수가 강동 대대로 터를 잡아 세력을 모아온 호족들이나 터줏대감들인데 손책은 이 님들을 너무 무력으로 때려 잡은 것 같다는게 제 솔직힌 인상이거든요.


제가 그래서 손책의 군사적 재능은 어떨지 몰라도 군주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인 포용력에선 다소 의문을 제기하는게... 실제로 손책을 암살한 사람들은 곽가가 말했던 "영웅호걸"들의 '빈객'들이었단 말입니다.


손책전을 보면 "손책은 용모가 수려하고 농담을 즐기며 성격은 활달하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기용하는데 탁월했다. 그러하기에 선비들과 백성들 중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 없었으며 기꺼이 손책을 위해 죽고자 했다."


이런 기록도 있지만 동시에 '오주전'을 보면...


(손책이 죽은 후) 몇몇 군은 멀리 험준한 곳으로서 아직 전부 복속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하의 영웅과 호걸들이 각 주와 군에 퍼져 있었으며 빈객으로 의탁하고 있는 선비들도 개인의 안위로서 자신이 가서 머물 곳을 결정하였으므로 군주와 신하의 두터운 관계는 없었다. 오직 장소와 주유 등은 손권이 자신들과 함께 대업을 이룰만 하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맡기고 손권에게 종하여 섬겼다.


이런 기록 또한 있습니다.


저 상기의 기록은 사실 엄밀히 말해 손책보다도... 당시 난세의 추세가 그러했다, 라는 느낌이 깊은데 그래도 손책 사후 직후의 상황을 묘사한 점 등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손책이 손권을 유언에 분명히 지명했음에도 선비들 중 극히 일부만 전 군주, 그러니까 손책의 유언을 인정했다는 점을 보면 결국 손책의 용인술이나 군신간의 믿음도 한계성이 깊지 않았는가, 란 생각이 들거든요.


주유의 경우는 강동 사성 호족 주씨의 후예고 장소의 경우는 강북의 인사였는데... [오록] 인가요, 손책이 유연에서 장소에게 탁고하는 대목이 있고 전 이걸 당시 손책군 사이에서도 어떤 신하들 간의 유대나 충성심이 [오주전]의 기록과 맞물려서 볼 때 그리 썩 깊진 않았구나... 라고 해석했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함장 at 2009/04/02 10:43
사실 연의에서 손책이 나오는 부분이 참 쓰기는 잘 썻어요. 상쾌하게 재미있지요. 삼국지평화에서는 손책은 언급도 제대로 안되고 동탁때 손견이 잠깐 나오고(그나마 굴욕), 적벽대전 할때 갑자기 손권이 나오는 식인데.(...)
Commented by 다르게 at 2009/04/02 11:31

지금 보니 '소패왕'이란 별명도... 진수가 쓴 역사서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배송지의 주석을 보면 당시 손책과 적대했던 '허공'이 손책을 항우에 비유했다는 기록이 있네요.



처음 오군태수 '허공'이 한의 황제(헌제)에게 표를 올려 말하길 '손책은 용맹하고 웅걸하여 항적(항우)와 비슷하니 마땅히 귀함과 총애를 더하여 수도로 불러 들이십시오. 만약 조서를 받고도 가지 않는다면 외방에 내쫓는 형세가 되어 필히 세상의 걱정거리를 만들 것입니다.'- 강표전// 손책전에 인용.


적어도 당시 사람들은 손책의 활약상을 '거품'으로 보거나 행운반 원술의 은덕반을 입은 행운아... 정도로는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Commented by rezen at 2009/04/04 20:27
군주로서의 종합적인 자질은 떨어졌다면서 또 거품은 아니라니 손책을 까는건지 옹호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손책의 거품은 연의의 수혜를 입으면서 형성되었다고 위에서 밝힌것 같습니다만. 정사를 읽었으면서도 사고의 바탕은 연의에 두고 있는 사람이 많기때문에 그게 더 심해진거구요.

육강은 손견때부터 친분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손견전을 보면 육강의 조카 의훈이 산적에게 공격당하자 손견이 군대를 움직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손책이 육강을 찾아갔을때는 손견이 죽고 의지할곳이 없던 시절의 일로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손책이 원술 휘하에 있다가 육강을 찾아갔다는 건데 그건 모양새가 좀 이상하죠.

하지만 (자세한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만) 육강은 손책을 홀대합니다. 아직 젊은 손책 입장에선 충분이 그에 대해 한을 품을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정사의 기술이 간략하기에 얼마든지 이견이 나올수 있습니다.

오나라는 기본적으로 호족과 개발영주들의 연합정권이고 망할때까지 이점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손권을 책임도 큽니다.)서로 출신과 이해관계가 다른 호족과 개발영주들을 누르고 중앙집권화를 이룩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강동에서 자리 좀 잡을 시점에는 원술이 황제 칭했다가 다굴 당해서 망하고 유훈하고 유표하고 싸우고 그게 좀 정리된 이후에는 조조와 사돈을 맺죠. 그리고 조조 원소가 맞 붙게 되자 허도를 칠려다가 허공의 빈객들에게 죽게 되구요. 손책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꽤 흔합니다.

유비도 유언-유장 부자시절부터 사분오열 되어있던 익주를 생전에 완전히 장악하진 못해 한중전, 유비 사후 반란이 일어났고 제갈량 시절에야 완전히 평정되었고 고려의 왕건도 사후 연합정권의 한계를 드러내며 내란이 일어나 광종, 경종이 수습했지만 그렇다고 유비나 왕건의 기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죠.

전 강동 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이미 한번 망했던 손씨의 깃발아래 호족과 무장들을 뭉치게한 손책의 역량을 높게 평가합니다.

허창기습책이나 진작부터 서주를 염두에 뒀던걸 생각하면 손책은 빠른 중앙집권화를 위해선 외정을 통해 친위세력을 양산하고 호족들을 누를 필요가 있다는것도 알고 있었고 협천자의 이점과 한왕실의 권위에 대해서도 꿰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성공여부는 차치하겠습니다.)

호족들을 차차 억누르고 조금씩 중앙집권화를 이룩하기 위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있었다는거죠. 안으로는 연합정권의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밖으로는 합비에 꼴아박다 형주를 기습하다 하면서 좌충우돌 두서없는 행보를 보여주던 손권보단 훨씬 낫다고 봅니다.

문제는 연합정권 시절에 손책이 급사하거죠.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고 하시는데 두 번이나 자신에게 덤볐다 패한 왕랑을 살려주고 유요의 시체도 정중하게 거둬주고 그 가족을 보살펴주는 등 마구다지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백호는 지금 남아있는 기록을 고려하면 조금 세력이 큰 도적떼 수준 이상으론 생각하기 힘듭니다.

허공도 손견전의 주석에서 회계군의 주우라는 사람과 싸워 그를 격파했다는 기록, 멀쩡히 살아있는 오군태수 성현을 대신해 오군을 다스렸다는 기록, 엄백호와 가까웠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다지 뒤가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대혹족 육씨 일족인 육강을 제외하면 유요도 왕랑도 다른 누구도 강동에서 대대로 터잡으며 인심 얻은 사람은 없는것 같은데요.

그리고 전 손책을 원술덕을 본 행운아라고 한 적없습니다. 군사적인 부분에서 과대평가 받으며 거품이 있는건 분명하지만 군주로서의 종합적인 자질에선 (유비나 조조만은 못하지만) 높게 평가합니다.

제가 글을 조금 자극적으로 쓴건 사실입니다만 좀 성의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제이크 at 2009/04/09 23:35
손책이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음은 분명하지만 확실히 섬나라 애들도 그렇고 손책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조비를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데 까여도 시원치 않은 인간을 찬양하는 건 무슨 심보인지
Commented by 세이드로엔 at 2009/04/10 05:00
조조를 띄우고 유비를 까고 싶은데 오, 후계자를 보니 아두는 두말할것 없이 아둔.

자식 교육에서 완소 조조님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설수도 있겠는걸?!

그런고로 조비님하를 띄워봅시다. 하악하악



.........이라는 단순한 이유는 아마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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