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07일
병자호란-강화도가 함락된 사연
강화도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이라는 세강의 어귀에 위치해 이 세 수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고 서해를 통한 보급이 용이해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몽골과의 전쟁때는 고려 조정이 이곳에서 장기간 항전을 벌였으며 조선 인조때는 유사시 국왕은 강화도로 파천하고, 세자는 남한산성으로 입성하여 기각지세를 형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방어에 만전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1636년 12월, 일찍부터 조선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청태종 홍타이지가 13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다수의 기병을 중심으로 쾌속 진격하는 청군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으로 큰 손실을 입은 조선군이 국경에서 저지하는건 무리였고 이에 조선 조정은 기존에 정해놓은대로 파천하기로 결정, 12월 14일, 김경징을 강도검찰로 이민구를 부검찰사로 홍명일을 종사관으로 임명해 비빈, 왕자, 종실 및 백관의 가족들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먼저 들어가 방비 태세를 강화하게 하고 강화유수 겸 주사대장 장신에게는 강화도의 수군을 정돈하여 해상을 봉쇄하고 각 도 수사들에게는 전 병력을 동원해 강화도로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강도검찰사 김경징은 임진왜란때 신립을 따라 종군했다 탄금대에서 전사한 김여물의 손자이자 인조반정 공신 김류의 아들인데 군사적 능력이 전무하고 무능한데다 게으르고 성격도 안좋지만 공신 아버지덕으로 중책을 맡게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습니다. 강화도로 건너갈때 부터 자신의 가솔과 절친한 친구 부터 먼저 건너가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너지 못하게 막아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김류는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집안 망칠 자식이라며 욕도 많이 먹었지요.
예친왕 도르곤이 이끄는 청군 16,000명은 인근의 선박을 모아 수리하고 민가를 헐어 배와 뗏목을 건조하는등 도하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김경징은 청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 믿고 날마다 음주가무를 일삼고 방어 병력을 배치하자는 주변의 건의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1월 21일 밤, 청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으니 곧 도하에 올것이라는 첩보가 들어오자 군정을 요란하게 한다며 오히려 군관을 죽여 버리려다 갑곶을 파수하는 장수로 부터 재차 보고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해안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방어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 와중에 본부에 군기(軍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안쓰느냐고 주변에서 묻자 '이것은 모두 우리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것인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쓰겠느냐' 고 대답합니다.
청군이 갑곶(오늘날 강화읍 동단에 위치하여 강화대교를 사이에 두고 김포 문수산을 바라다 보이는 곳, 갑옷만 벗어 쌓아 놓아도 건널 수 있을 만큼 얕다고 하여서 갑곶(甲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을 주 목표로 하여 전력을 집중시킬 것이라는 판단 아래 며칠전 밤을 새서 달려온 충청수사 강진흔을 배치해 청군의 도하를 막게하고 장신에게 강진흔과 합세해 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실수였으니...
도하 준비를 완료한 청군은 예상대로 갑곶 연안에 포진해 맹렬한 포격과 함께 돌격, 도하를 저지하려는 강진흔의 선단과 혈전이 벌어집니다. 강진흔은 겨우 7척만 거느리고 싸워 적선 10여척을 침몰시켰지만 곧 중과부적으로 전황은 조선군에 청군에 포위되고 강진흔 본인도 화살을 맞아 위급한 상황에 처합니다.
강진흔을 도우란 명령을 받은 장신은 전날인 21일 갑곶으로 이동했으나 마침 조수가 가장 낮을때라 낮은 수위로 이동 속도가 저하되어 청군과의 교전이 한창이던 시점에야 갑곶 남쪽 5리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장신의 선단을 본 강진흔이 북을 치며 지원을 요청하자 장신은 정포만호 정연과 덕포첨사 조종선을 선봉으로 청군의 배후를 공격해 한 척을 침몰시켰습니다.
이에 청군 일부가 반격 태세를 취하는 순간, 장신은 그대로 배를 돌려 도망가 버렸습니다. 강진흔이 “네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서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너를 베어 죽이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들은 척도 안하고 튀어버립니다. 강진흔보다 월등히 많은 전선을 거느린 장신이 적선을 격침시키면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배를 빼고 도망가버렸으니 강진흔은 더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수군은 괴멸되고 강진흔을 비롯한 수십명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검찰사 김경징과 부검찰사 이민구는 강진흔의 수군이 괴멸되고 적이 홍이포를 쏘아대자 겁에 질려 해안선에 배치되어 있던 부대들을 강화성으로 퇴각시킵니다. 강화성 남문 수비를 담당했던 임선백이 험준한 요새 놔두고 다 허물어져가는 성에 들어가서 어쩔거냐며 말렸지만 김경징은 기어이 육지로 물러나 해안선 방어병력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한동안 매목이 두려워 관망하던 청군은 조선군이 아무 반응이 없자 정찰병을 보내고 그 다음에야 일제히 도하를 개시합니다. 물러나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남아있던 중군 황선신 휘하 일부 병력만이 맞서다 전멸합니다. 그리고 도하 후 2시간여 만에 강화성으로 밀고 들어온 청군에 원임대신 김상용 그의 13살 난 손자, 홍명형, 김수남, 권순장, 김익겸등 많은이 순국하고 강화성도 함락됩니다.
13살 짜리만도 못한 김경징과 이민구는 놀라서 말도 버리고 물에 들어가 나룻배를 타고 장신의 배로 가서 함께 타고서 달아납니다. 봉림대군을 비롯한 비빈, 왕자, 종실등이 모조리 청군의 포로로 전락했고 그 다음 전개야 다 아시는대로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이 후 강진흔은 패전 책임을 지고 참형에 처해졌고 김경징과 장신도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사약 받아 죽었습니다.
추가>>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인데, 아버지는 반정때는 한거없고 이괄의 난 원인제공자중 한명이면서 정적 제거만 잘한다고 욕먹고 아들은 전형적인 소인배...김경징의 아들 김진표는 제 할머니와 어머니를 핍박해 자결하게 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하게 막장이군요.
그리고 1636년 12월, 일찍부터 조선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청태종 홍타이지가 13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다수의 기병을 중심으로 쾌속 진격하는 청군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으로 큰 손실을 입은 조선군이 국경에서 저지하는건 무리였고 이에 조선 조정은 기존에 정해놓은대로 파천하기로 결정, 12월 14일, 김경징을 강도검찰로 이민구를 부검찰사로 홍명일을 종사관으로 임명해 비빈, 왕자, 종실 및 백관의 가족들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먼저 들어가 방비 태세를 강화하게 하고 강화유수 겸 주사대장 장신에게는 강화도의 수군을 정돈하여 해상을 봉쇄하고 각 도 수사들에게는 전 병력을 동원해 강화도로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강도검찰사 김경징은 임진왜란때 신립을 따라 종군했다 탄금대에서 전사한 김여물의 손자이자 인조반정 공신 김류의 아들인데 군사적 능력이 전무하고 무능한데다 게으르고 성격도 안좋지만 공신 아버지덕으로 중책을 맡게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습니다. 강화도로 건너갈때 부터 자신의 가솔과 절친한 친구 부터 먼저 건너가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너지 못하게 막아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김류는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집안 망칠 자식이라며 욕도 많이 먹었지요.
예친왕 도르곤이 이끄는 청군 16,000명은 인근의 선박을 모아 수리하고 민가를 헐어 배와 뗏목을 건조하는등 도하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김경징은 청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 믿고 날마다 음주가무를 일삼고 방어 병력을 배치하자는 주변의 건의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1월 21일 밤, 청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으니 곧 도하에 올것이라는 첩보가 들어오자 군정을 요란하게 한다며 오히려 군관을 죽여 버리려다 갑곶을 파수하는 장수로 부터 재차 보고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해안선에 병력을 배치하고 방어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 와중에 본부에 군기(軍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안쓰느냐고 주변에서 묻자 '이것은 모두 우리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것인데, 내가 어찌 감히 마음대로 쓰겠느냐' 고 대답합니다.
청군이 갑곶(오늘날 강화읍 동단에 위치하여 강화대교를 사이에 두고 김포 문수산을 바라다 보이는 곳, 갑옷만 벗어 쌓아 놓아도 건널 수 있을 만큼 얕다고 하여서 갑곶(甲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을 주 목표로 하여 전력을 집중시킬 것이라는 판단 아래 며칠전 밤을 새서 달려온 충청수사 강진흔을 배치해 청군의 도하를 막게하고 장신에게 강진흔과 합세해 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근데 이게 또 실수였으니...
도하 준비를 완료한 청군은 예상대로 갑곶 연안에 포진해 맹렬한 포격과 함께 돌격, 도하를 저지하려는 강진흔의 선단과 혈전이 벌어집니다. 강진흔은 겨우 7척만 거느리고 싸워 적선 10여척을 침몰시켰지만 곧 중과부적으로 전황은 조선군에 청군에 포위되고 강진흔 본인도 화살을 맞아 위급한 상황에 처합니다.
강진흔을 도우란 명령을 받은 장신은 전날인 21일 갑곶으로 이동했으나 마침 조수가 가장 낮을때라 낮은 수위로 이동 속도가 저하되어 청군과의 교전이 한창이던 시점에야 갑곶 남쪽 5리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장신의 선단을 본 강진흔이 북을 치며 지원을 요청하자 장신은 정포만호 정연과 덕포첨사 조종선을 선봉으로 청군의 배후를 공격해 한 척을 침몰시켰습니다.
이에 청군 일부가 반격 태세를 취하는 순간, 장신은 그대로 배를 돌려 도망가 버렸습니다. 강진흔이 “네가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받고서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너를 베어 죽이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들은 척도 안하고 튀어버립니다. 강진흔보다 월등히 많은 전선을 거느린 장신이 적선을 격침시키면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배를 빼고 도망가버렸으니 강진흔은 더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수군은 괴멸되고 강진흔을 비롯한 수십명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검찰사 김경징과 부검찰사 이민구는 강진흔의 수군이 괴멸되고 적이 홍이포를 쏘아대자 겁에 질려 해안선에 배치되어 있던 부대들을 강화성으로 퇴각시킵니다. 강화성 남문 수비를 담당했던 임선백이 험준한 요새 놔두고 다 허물어져가는 성에 들어가서 어쩔거냐며 말렸지만 김경징은 기어이 육지로 물러나 해안선 방어병력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한동안 매목이 두려워 관망하던 청군은 조선군이 아무 반응이 없자 정찰병을 보내고 그 다음에야 일제히 도하를 개시합니다. 물러나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남아있던 중군 황선신 휘하 일부 병력만이 맞서다 전멸합니다. 그리고 도하 후 2시간여 만에 강화성으로 밀고 들어온 청군에 원임대신 김상용 그의 13살 난 손자, 홍명형, 김수남, 권순장, 김익겸등 많은이 순국하고 강화성도 함락됩니다.
13살 짜리만도 못한 김경징과 이민구는 놀라서 말도 버리고 물에 들어가 나룻배를 타고 장신의 배로 가서 함께 타고서 달아납니다. 봉림대군을 비롯한 비빈, 왕자, 종실등이 모조리 청군의 포로로 전락했고 그 다음 전개야 다 아시는대로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이 후 강진흔은 패전 책임을 지고 참형에 처해졌고 김경징과 장신도 대간의 탄핵을 받고 사약 받아 죽었습니다.
추가>>할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인데, 아버지는 반정때는 한거없고 이괄의 난 원인제공자중 한명이면서 정적 제거만 잘한다고 욕먹고 아들은 전형적인 소인배...김경징의 아들 김진표는 제 할머니와 어머니를 핍박해 자결하게 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하게 막장이군요.
# by | 2007/11/07 21:59 | 잡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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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쩝 완전 막장급 병자호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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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교과서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조부 김여물보다 더 유명했을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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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흔이 저렇게 죽은건 선조이상의 다크포스를 자랑하는 능양군덕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선조는 그래도 신각 승전보가 오르자 참형을 취하하라고 명령이라도 내렸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김경징 아들이라고 실록에 나와있더군요./로리
교과서에도 나왔었군요./크악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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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진리죠./paro1923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간 뒤에야 그나마 왕 다운 모습을 보여주더군요.../R쟈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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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고 보기 힘들죠./니트
그저 안구에 폭포만 흐릅니다./네리아리
네, 얼마든지요./어릿광대
그것도 아주 제대로요./서군시언
충신 집안이 어쩌다 저리 됐는지 참.../도시조
그렇죠./비공개
김여물이 지하에서 통곡을 했을겁니다./함부르거
글쎄요./amish
대쪽같은 형제죠./解明
어쨎든 원균처럼 패전을 자초하고도 살아있진 않아서 다행입니다./민규君
얼마든지요./비공개
그래도 잘싸워 청군을 격퇴한 사례도 여럿 있습니다./부르크
뭐, 그런거 없는 나라가 어디있겠습니까./jini
악몽이죠./오토군
덧붙여서 장신도요./S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