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군량이 없진 않았는데...

김자점의 뻘짓에 청군의 빠른 진격으로 허를 찔렸지만 남한산성에서 45일간 잘 버티던 인조가 성을 나와 굴욕적인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가 강화도 함락으로 왕자, 비빈을 비롯한 왕실인사 다수와 백관들의 가족이 포로로 잡힌 때문이고 둘째가 결정적으로 식량이 다 떨어져 더 버틸래야 버틸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꼴이 난 가장 큰 책임은 임금인 인조에게 있겠으나 인조도 좀 억울한게 2가지 사유 모두 어쩌면 피할 수 도 있었건만 잘못된 인선과 과도한 백성걱정(?)이 초래한 사태였습니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되었습니다. 원래는 심기원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고(부역에는 주로 승려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성안에 관아와 창고 등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어 유사시에 대비했습니다. 창고에는 식량을 비롯해 장기간 농성에도 버틸수 있도록 각종 생필품이 비축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1632년 12월 인조가 청군을 피해 들어왔을때는

창고의 곡식은 다만 1만 6천여 섬이 있어 1만여 군사의 한 달 동안의 양식에 불과하였다. 이서가 일찍이 수어사가 되었을 때 군량을 많이 쌓았으나, 병으로 체직된 뒤에 광주 목사 한명욱이 산성에 군량을 운반해 들여보내는 것이 민폐가 된다고 하여, 갑사창(甲士倉)을 강가에 짓고 군량을 모두 이 창고에 두었는데, 이에 이르러 모두 적에게 점거당하였다. 성중에 저축한 양식 및 소금ㆍ간장ㆍ종이ㆍ베ㆍ병기 및 그 밖에 잡물은 모두 다 이서가 준비한 것으로, 이에 힘입어 사용하였다.
-병자록-

이서 후임으로 온 한명욱은 높은 산위까지 군량 나르는게 백성들에게 민폐라며 끌어내리는 판단 착오를 저질렀고 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불러왔습니다. 청군의 남한산성 무력점령 의도를 잘 분쇄한 조선군이었지만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싸울수는 없었지요. 인조는 남한산성의 중심에서 한명욱을 외쳤을지도...

여기에 주사대장 장신의 원균급 센스와 낙하산 강도검찰사 김경징의 지 할아버지 지하에서 통곡하게 만드는 삽질로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게 됩니다.

by rezen | 2007/11/04 19:04 | 잡설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pwt9887.egloos.com/tb/390762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BigTrain at 2007/11/04 19:11
백성을 생각하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해야하는군요. ^^;
Commented by 愚公 at 2007/11/04 22:49
1만 6천여 섬이 있어 1만여 군사의 한 달 동안의 양식에 불과
==> 예전부터 생각한 것인데 도대체 당시 1섬이 얼마였고 식사량이 얼마나 되었길레
한달밖에 못 버틴다고 했을까요;; 요즘 기준이면 성인 남자가 1년동안 1섬도 안 먹겠
지만 원래 1섬이 장정 1인이 1년동안 먹을 분량이라는 말도 있고요.
Commented by 아르메리아 at 2007/11/04 23:11
[....] 때로는 해야할 일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거 참; 당황스럽군요.
Commented by 니트 at 2007/11/05 10:31
당시 식량이 모자란 산성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한 책을 본 기억이 나는군요..;;;
Commented by ZOON at 2007/11/06 00:39
백성을 생각하면서도 넓은 식견이 필요한 거로군요;;
Commented by rezen at 2007/11/06 12:07
그러게 말입니다./BigTrain

조선시대 남성의 한끼 식사 정량은 7홉으로 조선시대 1홉이 60cc이니 420cc이는 현대 한국남성의 하루 평균 쌀섭취량과 맞먹습니다. 여성도 5홉으로 현대 한국남성보다 많이 먹고 아이들도 3홉으로 한끼 쌀 섭취량이 현대 한국 남성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하루 2끼는 먹어야죠./愚公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인데 말이죠./아르메리아

소설 남한산성말인가요?/니트

남한산성의 본래 목적이 뭔지 생각해야하지 않았나 합니다./ZOON
Commented by 愚公 at 2007/11/07 23:20
하루에 일인당 5홉씩 먹었다는 얘기인데 정말 한끼에 7홉씩이 평균이라면 긴축하면서 먹은 것이긴 하군요.
(약 1결=24섬. 150만결=3600만섬. 200만결=4800만섬. 조선시대 인구는 500~2000만. 필요소비량 500만*0.6말*365=1095만섬. 2000만*1.4말*365=10220만섬. 1000만*1말*365=3650만섬. 얼추 맞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