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에서 제일 경이로운 건...

공룡이 아니라 여주입니다. 

작중 하이힐을 한번도 안벗는데 인도미무스 렉스와 익룡을 피해서 정글을 달려서 주파하고 

랩터를 피해서 대리석 바닥이 깔린 연구실과 계단을 남자들과 동등한 속도로 내달리며 

막판엔 하이힐 신은채 티라노사우르스 보다 빨리 달려서 유인해오는데 인도미무스보다 이 여자 발목이 더 경이롭더군요. 인간인가?

운동화 신겼으면 랩터를 달려서 따돌렸을 여인입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1편보단 못하짐나 3편보단 확실히 낫습니다. 물론 3편보다 못만들면 영화 만드는 재능이 없는거지만서도. 

티라노사우르스가 고전하긴 했는데 크기도 머리하나 더 큰데다 안킬로사우르스 꼬리에 정통으로 맞고도 생채기 하나 없고 총알도 못뚫는 유전자 괴물 상대로 그 정도면 선전한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서 막타를 딴 놈이 채간건 영 아니라고 보지만요.

by rezen | 2015/06/11 18:44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2)

김덕령의 전공

김덕령은 곽재우와 함께 임란 시기 의병장 중에선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입니다. 엄청난 용력을 가진 역사였으나 어리석은 선조에 의해 제거당한 아까운 장수 정도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나 요즘엔 그 실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서 되려 전공 없는 의병장으로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1593년 11월 거병하여 1596년 8월 옥사할때까지 제대로 된 전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김덕령은 1593년 8월에 모친상을 당해 상치르다 담양부사 이경린과 장성현감 이귀의 천거를 받고 전라관찰사 이정암까지 권유하여 의병을 일으킵니다. 3천여명이나 모였고 조정에선 의병대에 충용군이란 호칭을 내려주고 중앙의 관리를 받게 합니다. 

그의 전공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594년 2월 조정은 김덕령에게 진해, 고성 방면으로 나가 전라도로 진입하는 길목을 사전에 차단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정인홍 문인으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중 하나인 함양 일대에서 의병활동했던 정경운은 그가 쓴 고대일록 1594년 2월 2일자에 함양에서 김덕령을 보았으며 그의 지휘에 대해 알아듣기 쉽다며 호의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선 오달제의 조부 오희문이 전란을 피해 피난다니면서 쓴 쇄미록에선 이 시기에 김덕령의 군대가 전공을 세웠다고 적고 있습니다. 쇄미록 갑오년 3월 22일자 기록입니다.

'지난 달 초에 별장 최강으로 하여금 정병 40여명을 거느리고 초탐하는 일로 고성으로 나가다가 적과 만나서 90여명을 쏘아 죽이고 4명을 베어죽였다 한다. 그 뒤에 또 적과 창원에서 만나서 20여명을 쏘아 죽이고 1명을 베어죽였는데, 충용장(김덕령) 역시 군중에 있어서 적이 주둔한 곳으로 들어서 습격하려 했으나, 비단 중과부적일 뿐 아니라 해도 또한 저물고 사람들도 모두 힘이 다했기 때문에 충용장도 부득이 다만 칼을 휘둘러 무력만 과시하고 돌아왔다.   

김덕령 살아생전에 그의 군대가 왜놈 죽였다는 기록은 이거 하나 있습니다. 그나마 전자는 아무리봐도 부장 최강이 세운 공이고 후자도 군중에 있으면서 적진에 들이치려다(忠勇亦在軍中 欲入擊賊屯處) 말았다는거 말고 구체적으로 뭐했는진 알 도리가 없습니다.  
1594년 3월에는 군량 부족으로 3천이나 되는 의병을 유지할 수 없어 호남출신 500명만 남기고 돌려보내겠다고 조정에 보고합니다. 

동년 9월 2일 왜군 200여명이 고성을 노략질하자 권율의 지시를 받고 군사 200으로 요격에 나섰는데 남녀 50여명을 구출해냅니다. 왜군은 단 1명도 죽이지 못했다는 걸로 보아 강화협상 기간에 노략질하던 왜군이 조선군이 요격에 나서자 교전을 회피하고 물러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쨎든 공은 공입니다. 

당대기록에서 확인 가능한 전공은 이걸로 끝 입니다. 1594년 9월 말부터 곽재우와 함께 장문포 해전에 참가하긴 했지만 진영에 단단히 틀어박힌 왜군이 무대응으로 일관하여 아무른 공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애초 윤두수가 무리하게 진행시킨 작전으로 병사가 수백에 불과했으니 왜군이 적극 대응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겠죠.   

대신 눈꼽만큼 공 없다는 언급은 여러번 나옵니다.(1594년 1월 5일 기사, 1595년 2월 6일 기사, 1596년 1월 17일 기사 등등) 물론 실록엔 이순신도 공이 없다고 운운하는 선조와 대신들이 나옵니다만 이런건 아니라는 근거가 너무 많지만 김덕령은 진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전공은 훨씬 후대의 김충장공유사에 나옵니다. 김덕령은 현종 2년(1661)에 복권되는데 숙종 연간인 1694년 그의 행장과 시문을 엮어 김충장공유사를 발간합니다. 그리고 정조 15년(1791) 임경업 실기와 함께 편집해 재간행합니다. 그 이전 정조 9년(1785)년 충장(忠壯)이란 시호를 받았고 정조 12년(1788)에 고향에 비석이 세워지는 등 꾸준히 추모사업이 진해되었지요. 

자청해서 관왕묘 찾아가 제지낸 숙종이나 폐주라도 왕에게 끝까지 충성하다 죽은것은 훌룡하다며 유몽인 복권시켜주고 어린 후계자를 위해 단종 사적을 일제 재정비하며 환관, 궁녀, 노비까지 배식단에 올려준 정조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런 추모사업이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답이 빤히 나온다고 보이죠. 이 김충장공유사는 장문포 해전을 삭제하는 등 김덕령을 미화하는 성격이 강한데 여기서 그의 전공이 하나 더 나옵니다.

만력 23년, 1595년에 곽재우와 의령에서 협력작전을 벌였다는거죠.   

근데 이 기록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때맞춰 공이 병사를 끌고 도착하여(時公引兵到宜寧) 곽공과 함께 정암에 진을 쳤다.(郭公同陣鼎巖). 정암(鼎巖) 이 선명한 두 글자가 낯이 익네요. 바위 아래에는 깊이를 잴 수 없는 큰 못이 있었는데(巖下有大湫 深不可測) 왜군이 상류의 여울에 표목을 세웠답니다.(賊忽立標木 於上流淺灘)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아닌가요?

표목을 뽑아서(又拔其標目) 깊은곳에 옮겨 꽂았다는(移揷深湫) 이야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암진 전투의 진행 양상과 정말 유사합니다. 단지 곽재우가 아니라 김덕령이 주도하는게 다르죠. 

곽재우의 대표 승전으로 알려진 정암진 전투의 경우는 실록이나 난중잡록에선 간단하게 적을 막았다고 언급되고 김수를 보좌했던 이탁영의 정만록에선 왜군을 유인한다음 예의 그 붉은 옷을 이용한 기만술로 혼란케 만들고 숲에 매복시켜둔 병력이 강노를 쏘아 공격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의성 출신 의병장 신흘이 쓴 난적휘찬에선 여러명에게 붉은 옷을 입혀 왜군을 혼란시켰다고 적고있죠. 그러다 곽재우 사후 편찬된 문집인 망우선생문집에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표식 바꿔 꽂아 깊은곳으로 유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홍의장군전에도 왜군이 꽂은 깃발을 바꿔 꽂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걸 보면 조선 후기에 꽤나 알려져 있었던 이야기로 보입니다. 

곽재우는 1594년 연말에 진주목사에 조방장을 겸하며 산성수축에 열심이다가 1595년 말에 강화에 불만을 품고 관직버리고 낙향합니다. 강화협상 기간에 왜군이 왜 의령쪽으로 기습해 들어가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기록에 전혀 안나오거든요. 즉, 김충장공유사에 기록된 김덕령의 전공은 당대에 알려진 정암진 전투 일화에 김덕령을 집어 넣은 다음 시기만 바꿔 집어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1592년 5월 말쯤에 경상도에서 벌어진 전투에 김덕령이 참가할 순 없으니까) 이 창작의 산물은 1799년 호남 출신 의사들의 행적을 모아 기록한 호남절의록이 편찬때도 들어갑니다. 

종합해보면 실질적으로 그가 세운 군공은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명성에 비해 대단치 않으며 무엇하나 제대로 검증된게 없습니다. 명성에 비해 실제가 부족하다 평가받는 지휘관으로 신립이 있는데 최소한 신립은 북방 여진족과의 교전에서 싸움 잘하는거 하나는 입증했습니다. 반면, 김덕령은 그 잘났다는 용력부터 시작해 모든게 카더라 통신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검증된 게 없습니다.

호의적으로 평가하자면 시기가 시기인지라 제대로 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거겠죠. 삐딱하게 보자며 거품 줄줄 샴페인이구요.


덧. 김덕령 미화와 발을 맞춰 김덕령의 형 김덕홍도 주목받습니다. 김덕홍은 고대일록 인명록에 동생과 함께 의병에 참여해 고경명 막하에서 싸웠다는 기록 뿐 그대로 묻혀 있었는데 정조대에 이르러 보다 디테일한 일화가 등장하며(김덕령에게 동생이 어리고 노모가 계시니 돌아가라 권함) 관직을 받고 동생과 함께 비석이 세워집니다.   

덧2. 김덕령은 성혼 문하였고 인조반정 공신이 되는 이귀의 천거를 받았는데 이때문후 사후 서인쪽에선 꾸준히 기리고 추켜세우는 분위기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귀는 왜란 기간에 김덕령을 추켜세우다 못해 겨드랑이 사이로 호랑이가 나왔다는 유언비어까지 지어내서 선조의 빈축을 산 바 있죠.(선조실록 1602년 3월 6일 기사) 서인이 편찬한 선조수정실록도 김덕령에 대해 선조실록보다 훨씬 우호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신경은 재조번방지에선 아예 곽재우가 김덕령을 뒤따라 의병을 일으킨 것으로 뒤바꿔 놓았습니다. 

현풍(玄風)의 곽재우(郭再祐)는 덕령(德齡)이 온 것을 보고서 또한 집안의 종들과 지방의 호걸들을 이끌고 가재(家財)를 전부 내어 군비에 제공하여 정진(鼎津)을 견고히 지키면서 많은 적을 베니 적이 자못 두려워하며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렀다.
玄風郭再祐見德齡之來。亦率家奴及鄕曲豪傑。盡散家財。以供軍費。固守鼎津。斬馘甚多。賊頗畏之。號紅衣將軍
-재조번방지2-

곽재우가 누차 김덕령 띄우기의 조연으로 희생된 사유는 가장 인지도 높은 의병장으로 순종때나 복권되는 정인홍처럼 거론 못할 인사가 아니었고 남인이라 정치적 부담이 없어서 인 듯 합니다.

덧3. 한문 잘못된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by rezen | 2015/05/28 02:27 | 잡설 | 트랙백 | 덧글(1)

징비록 반응보다 궁금해진건데...

징비록 방영하고 디시나 부흥이나 여기저기 반응보면서 새삼 궁금해진건데 윤두수는 뭐땜시 그리 욕을 먹을까요?

제가 다 전쟁기 윤두수 행적을 다 살펴본건 아니지만 행정실무나 대명외교, 파천시 호종 임무등에서 충분히 제 몫을 했다고 보여지더군요. 평양성 전투때도 열세인 상황에서 나름대로 싸워보려고 했구요. 이때 선조 말리는거 보면 마냥 예스맨도 아니고..장문포 해전같은 현실에 안맞는 발상을 내놓는걸 보면 확실히 군사분야에선 좀 아니었고 류성룡보단 쳐지는거 같은데 흔히 댓글 달리는 것처럼 무능하고 소위 당파에 찌든 인물같진 않더란 말이죠.

결국 원균과 이순신과 엮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자주 보이는 비판이 자기 당파 이익 챙기느라 이순신 무고하고 원균 밀어줬다는거더라구요. 

그런데 실록보면 정유년 이전까진 조정에선 원균이 쓸만한 장수라고 평하는 부분이 꽤 보입니다.

신구차를 올려 이순신 구명하는데 힘쓴 정탁은 원균을 사졸들이 따르는 쓸만한 장수라 평하며 수사직에서 체직하면 안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1594년 11월 12일 기사조정에서 이순신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보던 사람중 한명인 이원익도 원균에 대해 평시에는 영 아니지만 전투시에는 쓸만한 장수란 평가를 내렸습니다.(1596년 10월 21일 기사) 1596년 6월 기사를 보면 김응남이 거제도를 점령하고 원균을 파견하자면서 원균 아니면 누가 거제를 지키겠냐고 말하고 윤근수가 이에 동의합니다. 정유년에 깽판치기 이전까진 서인, 남인 할거없이 원균에 대해 '전시에는 쓸만한 장수'라는 그릇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단거죠. 

옆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이 들으면 팔짝 뛸 이야기입니다만 조정에서 세세하게 알긴 힘들고 보고되는 원균의 비행도 어찌어찌 넘어가더군요. 선조는 그냥 칭찬일변도고. 게다가 밥숟갈 얻기는 열심히 했으니 인식이 나쁘지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이순신 파직건은 엄밀히 말해 선조가 감독, 각본, 주연이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때 부화뇌동 안한 조정관료가 몇이나 되는지 생각하면 윤두수에게만 유독 혹독한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순신에게 지휘권 넘기기 싫어서 수사들이 흩어져 자기네 수영만 지키게 하자고 했다는 말도 있던데 원균이 수군해체 시킨후 대책논의 과정(조정이 수군에 희망을 버렸을때)에서 전선이 남아있어도 군졸 충당하기 어려울 테니 당장 통제사 차출하지 말고 각도의 수사들이 관활 구역 군사들을 수습케하자는 의견이더군요. 윤두수가 이 말하기 바로 직전에 류성룡은 남은 전선을 모아 강화쪽에서 수비하자고 했는데 이게 이순신한테 판옥선 넘겨주기 싫어서 한 건 아니겠죠. 윤두수의 발언만 콕 찍어 악의적으로 해석될 개연성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로선 유독 윤두수가 원균과 도매금으로 엮어 욕먹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by rezen | 2015/04/20 04:05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1) | 덧글(8)

Q : 오늘의 징비록은 어땠어?

A : 전개가 토나오게 느렸어 

그래? 평소의 징비록이네.

탄금대 전투 4월 28일, 광해군 세자책봉식 29일, 파천 30일 새벽. 이틀도 안되는 시간대로 40분 넘게 떼워버렸습니다. 도대체 평양엔 언제가고 종전까진 어떻게 다룰지 모르겠습니다.  

정태우씨 캐스팅은 배우낭비란 이렇게 하는거란걸 보여줍니다. 아무런 비중도 없고 극분위기만 망치는 배역에 사극 만렙 찍은 배우를 집어넣는 센스라니. 그러니까 대왕의 꿈 같은거나 찍는 거겠죠. 정태우씨가 맡은 이천리 배역이 류성룡의 눈과 귀 역할인데 이 역할은 정태우랑 같이 다니는 군관 캐릭터만으로 충분히 수행가능합니다. 차라리 정씨로 설정했으면 정충신이 아닌가 기대라도하지. 

주막의 여인네 둘은 그냥 잉여구요. 망한 정통사극의 주된 특징 중 하나가 쓸데없이 여성 캐릭터 비중을 높이거나 집어넣는 다는건데 아주 충실히 이행중입니다.    

류성룡은 더 이상 말 할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여전히 절대선역 주인공의 단점만 모아놓은 상태...     

명배우들 모아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진짜 이 놈의 제작진은 자연산 감성돔이랑 돌돔주면 매운탕 끓여먹을 인간들입니다. 

PS. 오류 수정했습니다.

by rezen | 2015/04/05 23:41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7)

4/4 징비록 감상

1. 신립은 총병력 8천, 주력인 기병 운용에 불리한 탄금대에서 1만 8천의 고니시군을 맞아 절반을 사상시킨걸로 나옵니다. 실제 탄금대 전투가 이랬다면 후대에 신립 자질논란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왜란 전에 신립에 밀리지 않는 공적을 세웠으며 상주에서 패한 와중에도 왜군의 특성을 파악해 신립에게 조언한 이일은 겁많고 지질한 인물로 묘사되고 왜적이 조령을 넘었다고 보고한 군관을 냅다 죽여버린 신립은 미화되었는데 이일이 녹둔도 전투 후 류성룡 친구 이모씨에게 한 행동 탓인지, 싸우다 죽은 사람과 빠져나온 사람의 대우 차이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니면 제작진에 평산 신씨가 있는걸까요?

2. 류성룡이 용감히 싸운 장수로 정발과 송상현을 언급하는데 이둘은 임진년 말까지 생존설, 심지어 투항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류성룡은 초능력자인 모양입니다.  

3. 파천은 불가라며 이산해에게 버럭 소리지르는 작중의 류성룡은 무조건 한성을 지켜야한다 소리치는 신하에게 군신간 예의를 지키라 한 마디하고 선조에게 이런거 신경쓰지 말고 세자는 어가를 따르고 왕자들은 지방으로 보내 근왕병을 모집케 하라 조언한 징비록속 류성룡과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류성룡의 행적을 정반대로 바꿔놓은거죠. 

제작진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류성룡 캐릭터는 이른바 절대선역 캐릭터죠. 사극계의 마스터피스 용의 눈물이나 저주받은 걸작 무인시대, 전작 정도전이 주인공을 맹목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입체적인 캐릭터상을 구축하려 노력한 것과는 정반대 입니다. 

절대선역 주인공을 내세우고도 사극본좌 라인에 들어간 태조 왕건은 궁예와 견훤이라는 굉장히 개성 강한 라이벌들을 배치해 놓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왕건의 마냥 선한 면모도 큰 반감없이 그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거죠.(그리고 여기 왕건도 투항한 호족들의 가족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살하고 유검필 건으로 신하와 종친들을 은근히 압박하는 등 항상 맹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태봉은 태봉대로, 백제는 백제대로, 왕건 수하들은 또 그들대로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5화 내내 권리무한 책임전무 지배층 vs 백성을 사랑하는 류성룡 구도나 펼쳐놓은 징비록과는 근본부터 달랐습니다. 

지금도 이런데 명군 들어오면 어떨지(특히 벽제관 전투 이후) 벌써부터 아득하네요. 

4. 선조는 28일 패전 소식이 들어오자 마자 파천결정을 내리고 신하들이 반대하던 말던 밀어붙였습니다. 한양 사수는 종실 수십명이 몰려와 통곡할때 달래느라 한 마디 한게 다입니다.

5. 누구는 류성룡을 두고 성장형 캐릭터 운운하던데 나이 50에 성장형 캐릭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걸 보니 인생 참 쉽게 사시는듯 합니다. 전작의 정도전은 첫 등장시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이런걸로 정통사극 명맥 이어갈바엔 그냥 셔터 내리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by rezen | 2015/04/05 00:46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9)

한국 사극에서 바라보는 민초는...

근래 한국 사국에서 민초가 엑스트라가 아닌 좀 비중있는 캐릭터로 나올경우 패턴은 크게 3개로 나뉩니다. 

1. 개그, 감초 캐릭터

이런 유형은 MBC의 이병훈 사극에서 많이 볼 수 있죠. 반대로 정통사극 표방하는 KBS에서는 보다 적게, 개그요소가 다소 약해져 나옵니다.

이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2. 순박하고 욕심없는데 못된 지배층에게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피지배층
3. 더러운 세상에 맞서는 반항아

장담컨데 이 두가지 유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경험치 획득용 몹으로 주로 이용되는 왈패나 도적 캐릭터 정도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퓨전과 정통사극을 가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사극속 민초의 이야기는 신파극으로 흘러가는게 대부분 입니다. 추노의 업복이처럼 주연급이 아닌이상 민초의 역할은 선한디 선한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촉매 내지는 분위기 고양용 도구에 국한되죠.

한국 작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회생활 하듯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치열하게 이전투구하는 민초들의 모습을 절대 용납치 않습니다. 넉넉하진 않아도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며 그냥저냥 살아가는 모습도 보기 쉽지않죠.

그나마 민초를 좀 입체적으로 다뤄보려 노력했던게 퓨전사극 중에선 '추노'고 정통사극 중에선 '정도전'(정도전이 귀양가서 소재동에서 지내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추노는 중반부터 언년이를 중심으로 한 러브스토리가 주요 플룻으로 자리잡으면서 조선 민초들의 삶은 부차적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정도전의 소재동 귀양생활은 결국 신파극이 되어 질질짜다 끝나고 지배층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문제죠. 백성이란게 맨날 살기 힘들다고 질질 짜기만하거나 못참겠다고 들고 일어나기만 하면 그게 나라 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경기 나쁘고 정부가 맘에 안든다 쳐도 맨날 어허허헝 울거나 시위만 하면서 세월 보내진 않잖아요? 팍팍한 중에도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사기도 치고 할건 다 하죠.

21세기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는 과거 백성의 삶이 저게 사는건가 싶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전근대 신분제 사회에 살던 사람들을 지금 프레임으로 똑같이 바라볼 순 없죠.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희노애락과 삶이 있었습니다. 

근데 사극보면 이건 뭐 조상님들은 5천년간 착취 당하느라 웃을새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때 디시랑 일베에서 주워섬기는 '헬조선'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사극 작가들입니다.

민초 해석을 이렇게 해버리면 주인공 캐릭터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지배층의 착취를 받는 저 민초들을 위하는 주인공은 절대선으로 고정되기 쉬우니까요.(윤선주 작가 작품에서 많이 보이는 문제점이죠.)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데도 문제가 생깁니다. 박시백식의 '권리무한 책임제로 사대부(지배층)를 공격한다' 역사관이 도출되기 쉽기때문이죠.

KBS 징비록은 기존의 작품에서 다루지 않았던 백성의 삶을 다루겠다면서 (징비록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인물인)이순신까지 날려버렸습니다. 근데 2주간 그네들이 보여준 백성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위의 그것에서 나아간거 같진 않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백성의 삶을 얼마나 잘 다루고 캐릭터의 입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 인간들 사화동 다룬거 보면 무능한 조정탓에 고통받는 피해자(민초)와 그들을 위해 눈물흘리고 반성하는 주인공 구도가 연상되거든요.


PS. 개인적으로 사극작가들이 원하는 그런 지도자 상이 현실에 구현되면 나라든 정부든 어디한군데 망한다에 한표 던집니다.  

PS.2 그나마 추노나 정도전같은 시도도 전근대시대니까 할 수 있는겁니다. 일제강점기 배경으로 필요에 따라 저항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다? 시청자 게시판 폭파되고 조기조영 되겠죠.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민중은 독립만세 외치거나 착취당하거나 무조건 둘 중 하나죠.     

by rezen | 2015/02/23 00:58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12)

2차 엔트리 가지고 엔트으리 운운하는 사람들은...

국대 내야진은 주전 4명에 유틸 한명, 백업 유격수 한명해서 총 6명으로 구성되는게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베이징 올림픽 때는 박진만이 주전 유격수, 김민재가 백업 유격수, 정근우가 내야 유틸이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때는 유격수로 강정호와 손시헌을 뽑고 유틸로 조동찬이 들어갔습니다.

이번 14 인천아시안게임 내야 TO에선 오재원이랑 김민성이 내야 유틸로 경합중이고 백업 내야수 자리는 작년부터 김선빈-김상수가 양자대결 구도로 가다가 김선빈이 자진강판 하면서 김상수가 무혈입성 직전이죠. 헌데 그걸 모팀 팬들 중심으로 납득을 못하겠다면서 별별 썰을 다 풀며 엔트으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썰이란게 백업 유격수가 왜 필요한가 or 멀티능력 안되는 김상수를 왜 뽑았냐 2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상술했듯이 백업 유격수로 경합한 김상수한테 멀티 능력은 고려 대상도 아니고 백업 유격수가 왜 필요하냐는 소리는 올해부터 야구봤거나 알면서 휜소리하는 거거나 둘 중 하나겠죠.

저는 모팀팬들한테 정말 물어보고 싶은게 당신들 작년에 김선빈 국대 보내야 한다고 그리 열을내고 주장했었는데 백업 유격수 필요없으면 대체 김선빈을 뭘로 국대 보낸다고 생각한겁니까? 평화왕 강정호 대신 주전 유격수로? 아니면 줄곧 유격수 붙박이로 뛴 선수를 유틸로 쓰나? 

차라리 2루수에 안치홍 빠지고 정근우가 잔존한걸로 따지면 이해는 할텐데 엉뚱한 넘 붙들고 기억세탁까지 하며 진상 피우는건 진짜 눈꼴시리네요. 

by rezen | 2014/07/17 18:11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13)

정도전 시청소감

1. 왕은 세습으로 탄생하니 암군이 나올 수 있지만 재상은 과거를 치룬 인사를 거르고 걸러서 뽑으니 현명한 재상들이 잘 다스릴 것이다. 이게 재상중심체제를 설파하며 나온 논리인데 재상의 권세는 후대에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 발상에 지나가는 개도 웃겠네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면 본인부터 왕한테 공손해지던가. 자기부터 저렇게 막나가는데 다음 재상들이 잘도 겸양하겠다. 재상중심주의를 주장하며 하는 말이 아주 그냥 엘리트주의의 극한인데 밀본은 언제 만든답니까.

2. 이방원이 너무 개떡같아요. 이 대립이 제대로 긴장감을 유발하고 극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려면 이방원에게 정도전의 신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와 뚜렸한 차이점을 가진 정치적 지향점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왕 하고 싶었다, 그 다음에는 왕권은 세고봐야한다. 이게 끝이에요. 새파란 이방석 따위를 말로 처발립니다.(아 진짜, 저기서 쓸데없이 이방석 미화는 또 왜들어가서...) 그냥 배우 연기력이랑 시청자들이 역사를 다 안다는 점에 기대어서 내던져버렸어요. 이인임은 31화까지 살려놓고 정몽주는 드라마를 게이드라마로 만들면서 버프주더만 이방원은 이게 뭐야.  

3. 14세기 왕조국가에서 (뚜렷한 역모혐의 같은것도 없고)그냥 화근이 될 것이니 자기랑 사이 안좋은 왕자를 죽이라고 왕 면전에서 말하는 재상이나 그말에 큰소리 한번못치는 국왕이나... 이게 정도전인가요. 이덕일 망상속 송시열이지. 

by rezen | 2014/06/09 03:11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2)

정도전 4화까지 감상

1. 요 근래 퓨전사극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정통사극 부활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한게 보입니다. 국궁쏘며 양궁사법 안봐도 되니 좋더군요. 한국의 드라마 제작여건이 서양이나 일본에 비해 많이 열악하고 그래서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따져보면 용의 눈물도 그건 마찬가지였죠. 중요한 건 제작진의 마인드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잘 해주면 좋겠습니다. 

2. 2화에서 명 사신에게 예를 지키라며 바득바득 달려들다 하옥된 정도전을 찾아간 이인임이 미관말직 전전하며 자격지심이 쌓여 그리하는거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물론 역사 속 정도전은 실록에서 의도적으로 까내린 그 기록들을 다 믿는다 쳐다 이인임이 말하는 열등감과 소영웅주의에 가득찬 인간은 아닙니다. 근데 조재현 버전 정도전은 그래 보입니다. 매사에 타협이란 모르는건 그렇다치고 남의 말,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인 정몽주 충고도 안듣고 동문들은 면전에서 대놓고 밥벌레 취급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인데 그러면서 이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4화까지 제대로 한게 별로 없네요. 4화에서 북원과의 화친을 저지하긴 하는데 정몽주가 유생들 다끌고가서 지원사격 안해줬으면 어림도 없었겠죠. 대체 이런 대책없는 이상주의자에 왕따인 사람을 어떻게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그릴 것인지 참. 정도전의 가장 큰 구멍이 정도전 입니다.

3. 반면 임호씨의 정몽주는 좋습니다. 역사속 인물이란거 빼고 보면 그냥 지 잘난맛에 사는 아싸인 양반을 받아주고 항상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걸 보면 대인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문 대결하지고 찾아온건 그렇다 치고 나이도 어리고 들어온지도 얼마 안되는 놈이 동문사형제를 전부 밥버러지라면서 까는데 친구로 받아준것 부터가 보통 사람은 아니지요. 정무주만 보면 절친한 두 친구가 갈라설 그 때가 참 기대됩니다.

4. 짜증유발하는 정도전에 비해 악역인 이인임은 보스형 정치가로서 품격과 관록이 느껴지더군요. 다 좋은데 정도전이 저 따위니 이러다 대하사극 이인임 되는거 아닌가 몰라요. 선덕여왕도 미실이 진주인공 해먹고 연개소문도 대하사극 수양제 찍었는데 이것도 그렇게 되는거 아냐... 

 

by rezen | 2014/01/13 18:27 | 기타 잡다한것 | 트랙백 | 덧글(10)

뮤지컬 엘리자벳 - 이 여자는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을까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던데 이번에 가까운 창원에서 하길래 낮공연으로 보고왔습니다. 낮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넘버나 배우분들은 좋았습니다. 전 막귀라서 어느 배우가 잘하고 못하고 그런건 전혀 구분을 못하겠고 그냥 멋있게 잘 부른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키치가 특히 좋더군요. 

다만 개인적으론 스토리가 별로 였습니다. 

뭐랄까. 결혼은 사랑 이전에 살아온 환경과 성격을 따져 봐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엘리자벳을 그나마 호의적으로 바라보자면 너무 어린 나이에 성장 환경으로보나 뭘로 보나 절대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과 결혼해서 고생했다는거 정도. 나이 먹고도 계속 그러는거나, 자식한테까지 그러는거 보면 일국의 황후로선 굉장히 모자란 사람이고 가정에선 나쁜엄마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악덕 시어머니로 조피 대공비 입장도 이해는가는게 그녀 본인도 정략결혼으로 결혼해서 엄청 고생했고 제국을 위해 황후자리 스스로 포기할 정도로 강단있는 사람인데 신부감도 아니었던 여자랑 고집피워 결혼했으니 어떻게든 황후에 걸맞게 만들어놔야죠. 뮤지컬에도 고증되어 나오지만 엘리자벳이 딱히 행실이 똑발랐던 것도 아니고. 자식들 빼앗아 갔다고 슬퍼하는데 미모 가꾸는거랑 밖으로 놀러다닌거 밖에 한적 없는 사람이 양육인들 제대로 했을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자유 찾는다며 자기 자식까지 외면하는거 보면 참...

뮤지컬에선 죽음을 의인화시켜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벳과 삼각관계를 형성시켰는데 그렇게 해놓으니 결국 황제는 신부 잘못골라 자식 잃고 가족 잃은게되죠. 그러면서도 기울어가는 나라 붙잡고 평생 일하고 평생 마누라 바라봤는데 얼씨구 마누라는 죽고나서 자유찾았다며 딴 남자 하고 키스를 하네? 그냥 '샹년'이랑 '샹놈'이 애먼 남자하나 물먹였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뭐, 따지고보면 억지로 엄마가 찍어준 여자말고 딴 여자랑 결혼한 황제 업보긴 하겠습니다만.

근데 한가지 궁금한건 이 엘리자베스 황후는 왜 그렇게 인기가 좋은걸까요? 그러니까 뮤지컬이 나올 정도면 본토인 오스트리아나 독일쪽에서 인기가 많다는 거고, 실제로 찾아보니 박물관이나 관련 관광상품이 엄청 잘되어 있는 모양이던데 아무리봐도 이 여자는 그렇게 이쁨받을 사람이 아닌거 같단 말이죠. 명성황후처럼 나라 말아먹는데 한몫하진 않았지만 만인의 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 책임을(황후는 물론 부모로서의 책임까지) 전부 방기했는데 그렇게 기념할 가치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y rezen | 2013/10/21 01:53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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